좋은 시

내품에그대 눈물을

시인묵객 2013. 11. 7. 19:30

 

 

 

내 품에, 그대 눈물을 / 이 정 록

 

 

내 가슴은 편지봉투 같아서

그대가 훅 불면 하얀 속이 다 보이지

 

방을 얻고 도배를 하고

주인에게 주소를 적어 와서

그 주소로 편지를 보내는 거야

 

소꿉장난 같은 살림살이를 들이는 사이

우체부 아저씨가 우리를 부르면

봉숭아 씨처럼 달려 나가는 거야

 

우리가, 같은 주소를 갖고 있구나

전자레인지 속 빵 봉지처럼

따뜻하게 부풀어 오르는 우리의 사랑

 

내 가슴은 포도밭 종이봉지야

그대 슬픔마저 알알이 여물 수 있지

그대 눈물의 향을 마시며 나는 바래어가도 좋아

우표를 붙이지 않아도 그대 그늘에 다가갈 수 있는

내 사랑은 포도밭 종이봉지야

 

그대의 온몸에, 내 기쁨을

주렁주렁 매달고 가을로 갈 거야

긴 장마를 건너 햇살 눈부신 가을이 될 거야

 

(·교사 시인, 1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