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가을 나비

시인묵객 2013. 9. 27. 19:30

 

 

 

 

가을 나비 / 이 기 철

 

 

여름이 제 한 살림 거두어 떠나려다가

호박의 무게에 치마가 눌려 주저 앉는다

 

잠자리들이 산을 떠메고 가려고

떼 지어 몰리다가 제 그림자에 놀란다

 

옥수수 잎 서걱이는 소리

뒤로 가을 나비가 날아왔다

 

아, 저 나비

 

서리가 드리는 결별 뒤에서

저리도 천천히 떠날 수 있다니

떠남이 저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니

 

모든 부재를 부르는 존재들의 이마가

저토록 오래 눈부실 수 있다니

 

(시인, 1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