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시인묵객
2013. 5. 8. 19:30
할미꽃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 순 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 여름 쬐약 볕을 머리에 인 채 호미지고
온종일 밭을 메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 겨울 꽁꽁 언 냇물에 맨 손으로 빨래를 해도
그래서 동상 가실 날이 없어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난 괜찮다, 배부르다, 너희 들이나 많이 먹어라
더운 밥, 맛난 찬 그렇게 자식들 다 먹이고
숭늉으로 허기를 달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팔꿈치가 죄다 해져 이불이 소리를 내고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어 닳아 문드러져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술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허구 헌 날 주정을 하고
철부지 자식들이 속을 썩여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 인줄만 알았습니다
어느 날 아무도 없는 집에서 외할머니 사진을 손에 들고
소리죽여 한없이 흐느껴 우시던 엄마를 보고도
아, 그 눈물의 의미를
이 속없는 딸은 몰랐습니다
내가 엄마가 되고,
엄마가 낡은 액자 속 사진으로만
우리 곁에 남았을 때
비로소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