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가을의 기도

시인묵객 2012. 10. 30. 19:30

 

 

 

가을의 기도 / 이 해 인

 

 

가을이여 어서 오세요

가을 가을 하고 부르는 동안

나는 금방 흰 구름을 닮은 가을의 시인이 되어

기도의 말을 마음속에 적어봅니다

 

가을엔 나의 손길이 보이지 않는 바람을 잡아

그리움의 기도로 키우며 노래하길 원합니다

 

하루하루를 늘 기도로 시작하고

세상 만물을 위해 기도를 멈추지 않는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가을엔 나의 발길이 산길을 걷는 수행자처럼

좀 더 성실하고 부지런해지길 원합니다

 

선과 진리의 길을 찾아

끝까지 인내하며 걸어가는

가을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가을엔 나의 언어가 깊은 샘에서

길어 올린 물처럼

맑고 담백하고 겸손하길 원합니다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맑고 고운 말씨로 기쁨 전하는

가을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수녀 시인,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