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저녁무렵

시인묵객 2012. 10. 26. 19:30

 

 

 

 

저녁 무렵 / 도 종 환

 

 

 

열정이 식은 뒤에도

사랑해야 하는 날들은 있다

벅찬 감동 사라진 뒤에도

부둥켜안고 가야할 사람이 있다

 

끓어오르던 체온을 식히며

고요히 눈감기 시작하는 저녁 하늘로

쓸쓸히 날아가는 트럼펫 소리

 

사라진 것들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풀이 풀 다 시들고

잎이란 잎 다 진 뒤에도

떠나야 할 길이 있고

 

이정표 잃은 뒤에도

찾아가야 할 땅이 있다

 

뜨겁던 날들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거기서부터 또 시작해야할 사람이 있다.

 

부드러운 직선(실천문학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