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아버지의 추수

시인묵객 2012. 10. 16. 19:30

 

 

 

 

 

아버지의 추수(秋收) / 허 윤 영

 

 

가을바람 앞세우며

종일 억새밭을 뒤적이던 햇살이

사립문 지나 방문 돌쩌귀를 비틀며

가부좌를 틀자

등 떠밀려 앞마당에 내려앉은 낙엽은

발갛게 서산에 먼저 달아올라

군불을 지피고 있었다

 

포근해질 겨를도 없는 들녘이

그때서야 가을걷이 한답시고

막걸리 주발에다

손가락으로 저어 벌컥벌컥 마신 뒤

마당에 낙엽을 쓸어 모아

허기진 아궁이에 배를 채워주고

방안에 잠든 햇살 달래

또 내일 들녘으로 가시는 것 이었다

 

사무실 주위를 맴돌던 햇살이

막 창문을 내리고 있다

모니터에 볏단처럼 남아

딸꾹질을 멈추지 않는 파일들

들녘으로 가신

내 아버지의 추수(秋收)가

몹시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