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순례자

시인묵객 2012. 7. 3. 19:30

 

 

 

 

 

순례자 / 권 순 자

 

 

저녁이 되면 낯선 마을 처마 밑을 맴돌지요

달빛이 휘영청 길을 열어주지만

길도 추워서 바람이 머물지 않지요

 

한 몸 뉠 곳 없는 고양이

주뼛주뼛 처마 밑을 서성거리지요

흙에 묻힌 역사는 다시 살아 되풀이 되는데

창백한 꽃들이 달빛에 파랗게 질려 떨고 있는데

 

어둠이 왜 자꾸 짙어만 가는지

꽃들의 잔기침 소리, 목울대를 흔드는 소리 어느 새

길고 가늘게 뻗어 밤안개로 피고 있어요

안개끼리 기침하고 있어요

뿌연 고통의 뿌리들이 사방에 퍼지고 있어요

 

제 가슴 두드리는 넝쿨손, 허우적허우적

반짝이는 푸른빛들이 날카롭게 허공을 조각내는 한밤

앞서간 순례자들이 뼈를 이어

하늘로 다리 놓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