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어머니 장독대
시인묵객
2012. 7. 10. 19:30
어머니의 장독대 / 박 종 영
봄 물결 타는 초록빛,
조금은 도도하게 흔들리고
시간의 매듭이 쌓여 풍경이 되는 뒤란 대숲,
은밀하게 산비둘기 불러들여 수작을 건다
비끼는 대나무 사이 떡가루처럼 떠 있는 안개 속으로
어스름은 도둑처럼 찾아들고
강변 매화 외롭게 피어 시린 봄을 달래는 밤이면,
흙담 기댄 어머니의 장독대 그곳엔
언제나 그랬듯이 누구의 세월도 아닌
정화수 한 사발 새벽달로 차오르고,
별들은 그렁그렁한 눈물을 가득 채운다
묵주 같은 어둠의 깊이에 서성이는
정갈한 신의 영험을 한곳으로 불러 모으면서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못하고 두 손 빌어
비운의 가족사를 외우는 어머니,
그토록 맨발 같은 차가운 목소리는 이어지고
한 줄기 빛의 기운으로 뽀얀 달무리 피어난 그곳,
새벽으로 돌아 빙긋이 기쁨안고 승천하는 혼백이
흰밥 한 숱 깔, 맑은 술 한 모금, 음복(飮福)으로 흡족했을까?
별꽃이 움트는 소리만큼 아름다운 소원은
창창한 대숲의 행간마다
푸른 바람이 멈추고 나서야 여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