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동백열차

시인묵객 2012. 5. 22. 19:30

 

 

 

 

 

 

 

동백 열차  / 송 찬 호

 

 

지금 여수 오동도는

동백이 만발하는 계절

동백 열차를 타고 꽃구경 가요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거짓말인 삼월의 신부와 함께

 

오동도, 그 푸른

동백섬을 사람들은

여수항의 눈동자라 일컫지요

 

우리 손을 잡고 그 푸른 눈동자 속으로 걸어 들어가요

 

그리고 그 눈부신 꽃그늘 아래서 우리 사랑을 맹세해요

만약 그 사랑이 허튼 맹세라면 사자처럼 용맹한

동백들이 우리의 달콤한 언약을 모두 잡아먹을 거예요

말의 주춧돌을 반듯하게 놓아요 풀무질과 길쌈을 다시 배위요

 

저 길길이 날뛰던 무쇠 덩어리도 오늘만큼은

화사하게 동백열차로 새로 단장됐답니다

삶이 비록 부스러지기 쉬운 꿈일지라도

우리 그 환한 백일몽 너머 달려가 봐요 잠시 눈 붙었다

깨어나면 어느덧 먼 남쪽 바다 초승달 항구에 닿을 거예요

 

 

송찬호 시집『붉은 눈, 동백』(문학과지성사,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