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돌에 대하여

시인묵객 2012. 5. 14. 19:30

 

 

 

 

돌에 대하여 / 이 기 철

 

 

구르는 것이 일생인 삶도 있다

구르다가 마침내 가루가 되는 삶도 있다

가루가 되지 않고는 온몸으로 사랑했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뜨겁게 살 수 있는 길이야 알몸밖에 더 있느냐

알몸으로 굴러가서 기어코 핏빛 사랑 한 번 할 수 있는 것이야

맨살밖에 더 있느냐

맨살로 굴러가도 아프지 않은 게

돌멩이밖에 더 있느냐

 

이 세상 모든 것, 기다리다 지친다 했는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지치지 않는 게 돌밖에 더 있느냐

빛나는 생이란 높은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치열한 삶은 가장 낮은 데 있다고

깨어져서야 비로소 삶을 완성하는

돌은 말한다

구르면서 더욱 단단해지는 삶이,

작아질수록 더욱 견고해지는 삶이 뿌리 가까이 있다고

깨어지면서 더욱 뭉쳐지는 돌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