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바람의 목회

시인묵객 2012. 4. 22. 19:30

 

 

 

 

 

 

 

바람의 목회 / 천 서 봉

 

 

붉은 창문들 저무네. 거리엔 부옇게 물길이 번지고 벗겨진 대지의 표면이

비늘처럼 흘러가네. 햇살의 따가운 못질 뒤에도 나무들은 자꾸만 제 잎 쥐고

휘청거리네.

 

버려진 오르간처럼 켜켜이 쌓인 공사장 파이프들이 저녁을 연주하네. 노을

따위를 발음하면 삶은 늘 뿌리부터 뒤척인다고, 저기 어깨 둥글게 웅크려 철

야 기도를 준비하는 가로수.

 

공중을 만지는 평화로운 연기를 보네. 바람은 오후 6시를 읽는 기술, 혹은

복음. 흔들려야지. 흔들려야지. 깃대처럼 골목에 나를 꽂아두네. 떨어져 빈

나뭇잎 자리까지, 다만 모든 것이 바람의 영역이네.

 

늦은 상점의 문이 스르륵 밀렸다가 절로 닫히네. 누구일까. 누구일까. 어둠

의 긴 목이 자꾸 기울고 사람들은 정물처럼 늙어가네. 모두가 바람의 존재를

믿었지만 아무도 그의 뼈마디를 보지 못하네. 푸르르,

 

저마다의 십자로를 건너는 시간, 허파꽈리처럼 웅크려 핀 생의 바람꽃들,

지천이네. 자라, 자라, 잠들지 않는 한밤의 환한 집회를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