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어쩌다 시인이 되어

시인묵객 2012. 2. 25. 19:30

 

 

 

 

 

 

어쩌다 시인이 되어 / 이 기 철

 

 

 

내 어쩌다 시인이 되어

이 세상길 혼자 걸어가네

내 가진 것 시인이라는 이름밖엔 아무것도 없어도

내 하늘과 땅, 구름과 시내 가진 것만으로도 넉넉한 마음이 되어

혼자라도 여럿인 듯 부유한 마음으로

이 세상길 걸어가네

 

어쩌다 떨어지는 나뭇잎 발길에라도 스치면

그것만으로도 기쁨이라 여기며

냇물이 전하는 마음 알아들을 수 있으면

더없는 은총이라 생각하며

잠시라도 꽃의 마음, 나무의 마음에 가까이 가리라

 

나를 채찍질 하며

남들은 가위 들어 마음의 가지를 잘라낸다 하지만

나는 풀싹처럼 그것들을 보듬으며 가네

내 욕망의 강철이 부드러운 새움이 될 때까지

나는 내 체온으로 그것들을 다듬고 데우며 가네

 

내 어쩌다 시인이 되어

사람과 짐승, 나무와 풀들에 눈 맞추며

맨발이라도 아프지 않게

이 세상길 혼자 걸어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