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겨울 강가의 사시나무

시인묵객 2012. 2. 1. 19:30

 

 

 

 

 

겨울 강가의 사시나무 / 정 지 웅

 

 

 

그래 아직은 행복 하구나

네 그루터기에

부모 없는 잡풀 몇 키우고 있구나

 

호주머니에 숨어있는 한 가계의 벌레들

잎사귀에 재우고 나뭇가지에 앉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모두들 잘 보살펴 주었구나

 

작년부터 꽃 피우지 못하여

영양제 꽂고 긴 겨울을 나더니

올해도 꽃 한 송이 없이 낙엽만 태우고

지붕 없이 살아가는 새들의 엄마가 되었구나

 

산다는 것은 숨이 내려앉는 순간까지

제 것이 아닌 목숨들을 껴안고 사는 일

죽어서도 발끝을 모아

가까운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이었구나

 

수면 위에 배 한 척 떠 있지 않아도

강물은 흐르고 갈대는 손을 흔든다

어름치는 네 머리 위를 지나 떨어진

가슴 뜨거운 별을 남몰래 주어 먹고

나는 떨어지는 낙엽들을 주어다

세상 슬퍼하는 사람들과 빵을 구워야겠다

 

잃어도 모든 것이 온전할 사시나무여

눈 내리는 캄캄한 밤이 오면

너의 가지마다 살찐 빵을 달아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