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시인묵객 2011. 10. 21. 19:00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도 종 환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 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화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맑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을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 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 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 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