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비워진다는 것
시인묵객
2011. 9. 28. 21:13
비워진다는 것 / 김 동 규
비워지기 위하여 달은 낮에도 지지 못 했는가
낙엽을 향하여 바람이 손 흔들던 늦가을 저녁 무렵,
비운다는 것이 결코, 헛된 짓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는 지금에 와서야
잎이 진 가지에서 다시 잎이 돋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비워둔 자리에만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안다 한들, 그냥 비워지는 것이 어디 있으랴
밤낮없이 두 보름을 뜨고 져야 달은 비워지고
무서리를 맞고서야 가지는 잎을 떨어낼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