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있어 행복합니다.
꿈이 있어 행복합니다. / 김 귀 수.
자식들 모두 출타하고 혼자 남겨진 아파트에서
흙 냄새 물씬한 나 어릴 적 시골집이 그리워
흰머리 성성한 저무는 인생 뒤안길에 서서
가슴이 허전하여 내 나이에도 이런 꿈을 꿉니다.
호수가 보이는 작은 언덕 위에 하늘이 보이는
조그만 창 하나의 다락방이 있는 아담한 집 하나를 짓자.
집 앞에는 울타리 없는 대문 틀을 세우고
양가에로는 무화과 나무와 석류나무를 심고
싸립문에는 머그잔 크기의 종 하나 매달아
아침저녁 열고 닫을 때 마다 뎅그랑 뎅그랑
청아한 종소리가 울리게 하자.
집안으로 들어오는 마당을 가로지르는 안길에는
자갈돌을 체워넣은 징검다리를 놓고
마당 양쪽으로는 자그맣게 화단을 일구자.
봄이면 노란 개나리, 사월 철죽에 오월 장미도 심고,
여름이면 봉숭아꽃을 따서 손톱에 꽃 물도 들이고
단국화 사루비아 채송화 꽃에다 나팔꽃 다알리아도 심자.
여름 내내 나팔꽃 분꽃이 피고
가을에는 맨드라미 해바라기 국화도 피게 하리라.
언덕을 내려가는 좁다란 외길을 따라 아마도 가을에는
코스모스 꽃길 되어 장관이리라.
집터 쪽진 땅 귀퉁이 텃밭 일구고
옥수수에 감자 심고 고추 심고 오이 심고
들깨 상추 쑥갓도 심어 한낮 텃밭 곡괭이 호미질로
이마에 짭쪼름한 구슬땀 손등으로 훔치며
뒷산 넘는 하루해의 석양빛에 길게 그림자 드리울 때는
아름다운 전원의 한 폭의 풍경화가 되리.
봄날 유채 꽃에 여름의 장다리꽃 흐드러진 초록의 계절
화사한 햇살아래 자연은 눈부시어 한 폭의 수채화 그림이 되리...
더운 여름 시원한 모시옷의 반가운 손님이 오면
마당 한 켠 등나무아래 대나무로 엮은 마루에 앉아서
뒤란 장독 옆 우물 속에 식혀둔 참외 수박 건져 잘라먹으며
마른 쑥 지펴 모깃불 피워놓고 밤늦도록 가슴 따뜻한
자식 얘기 주고받으면서 울고 웃고 하리라.
가을날 단풍 같은 아름다운 미소짓고
그리운 손님이 오면 집안 청 마루 앞뒷문 열어놓고
편안히 벽 기대고 앉아 뒤란 장독 옆
접시꽃 향기도 맡고 다알리아 도라지꽃 향기도 맡고
치자꽃 향기도 맡으면서
알알이 영롱한 석류, 무화과,
달콤한 대추 과일 향에 흐뭇한 미소 나누며
세상살이 담소로 인생은 풍요하리라.
한가한 휴일 오후에는 다정한 이와
해지는 석양 무렵 노을이 내려앉은
호수를 내려다보며 다락방 창가에 앉아
김이 오르는 따끈한 차 향에 취해 코끝으로
깊은 숨 들이켜 내쉬며 아낌없는 사랑으로 행복해 하리.
때로는 계절이 오고 가는 빈 공간
소녀처럼 까닭 없이 센티해 질 때는
물안개처럼 피어나는 외로움에 풀잎을 떨게 하는
적막한 고독감에 달빛에 취해 별빛에 취해
주름지는 눈가를 촉촉한 이슬에 젖기도 하리라.
때로는 불면에 시달리는 밤이라도 찾아오면
수줍은 시인의 마음으로 가슴을 쏟아내는 편지를 써서
주소 없는 봉투에 담아 자전거길 오고 가는 우체부를 보며
혼자 부칠 곳 없는 편지를 들고 멋 적어 가슴 뛰기도 하리라.
한여름 여우비 소나기에 주책 없이
넓다란 토란잎 머리에 쓰고 추녀 끝에 기웃기웃
떨어지는 빗방울에 어깨를 적시기도 하리라.
아침저녁 짬 내어 갈대 숲이 우거진 호수 변 고요한 오솔길 따라
님의 손 마주 잡고 두런두런 정담을 나누며 산책도 하고
주름살 깊게 패인 미소라도 아낌없이 나누며
손수 일군 텃밭에서 찬 꺼리 챙겨
알싸한 풋고추 된장 찌게 상큼한 풋 마늘에 쑥갓 상추쌈 곁들인
조촐한 저녁식단 차려놓고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당신을 기다리며
해질 무렵 다락방 창가에 앉아 언덕길 올라오는 그대
손 흔들어 반기는 따뜻한 그림자가 되고
지쳐 가는 인생 길을 아마도 아름다운 동행으로
끝없이 함께 하리니 우리 세상 다 하여
이별하는 그 날이 온다 해도 아쉽지 않는 사랑으로 행복하였노라고...
하얀 겨울이오면 마른 가지 설화가 곱게 피는
호수가 보이는 조그만 언덕 위에
울타리 없는 싸릿 문에 뎅그랑 뎅그랑
종소리 울리는 흙 냄새 나는 작은 집 하나 짓고 사는...
아득히 지나 온 길 챙길 것 없어 공허하여도
지금도 나는 이런 꿈으로 빈손으로 황혼길 가드라도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