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겨울 이야기

시인묵객 2011. 1. 17. 14:29


 

 

 

 

 

 

겨울 이야기 / 박 해 옥

 

 

 

 

 

 

하늘 한 뼘 잘라다 창에 걸었더니

단박에 눈이 펄펄 나린다

이런 날은

쓰다 만 편지를 마저 쓰기 좋아라

 

마른 장작 같은 마음도 물기가 돌아

기억의 뿌리는 기다랗게 남으로 뻗고

아련한 기슭에도 눈이 내린다

 

장승상이 되어 기다려준 추억이여

얼음 살이 두터운 무논에서

성아가 떠준 벙어리장갑을 끼고

오라베가 밀어주는 앉은뱅이 썰매로 씽씽 달리고 싶다

 

맞주름 치마 아래 맨살처럼 부끄러웠던 첫 사랑이여

기차를 타고 떠난 남자를 그리워해도 되겠느냐?

 

그대의 손을 잡고

미루나무 이파리처럼 팔랑거리며

눈 내리는 철롯둑을 하냥 걷고 싶다

 

설핏 자다 깬 듯한데

나 너무 멀리 왔다고

희디흰 눈꽃 잎에 안부를 적어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올 줄 알면서도

그리움의 편지를 다시 띄우는

눈이 오는 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