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대나무 / 배 한 봉
눈 그친 아침
댓잎에
얼음 조각이 잔뜩 매달려 반짝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것들은 대나무의 푸른 빛깔을 투명하게 통과시켜
바라보는 이의 눈을 시리게 만든다
그러나 바람이 불면 대나무들은 좌우로 흔들리면서
그 얼음의 오색찬란한 수정 비늘을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게 한다
대숲은 마치 오래된 동굴 같은 어둠을 간직하고 있어서
그런 빛나는 물체들을
하늘의 천장이 허물어질 때 생긴 보석처럼 받아들이지만
대나무는 허리 굽혀 그것들을 줍지 않는다
얼음 사태가 잠시 가지 끝을 휘어 놓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잎을 땅에 끌며 욕망을 채우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 것이다
삶이, 길 없는 숲에 들어와
얼굴에 걸리는 거미줄을 떼어내며 맴도는 일 같을 때
뿌리로써 서로를 움켜잡고
꼿꼿하게 일생을 뻗어 올린 대나무의 의연함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대나무 꼭대기를 쳐다보며, 하늘을 향해
나무 타기를 되풀이하던 소년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
은분을 바른 듯 얼음이 붙어있는 대나무 몸통에서
맑은 냉기가 뿜어져 나와 더욱 손이 얼얼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더러 있겠지만,
미끌어지면서도 한없이 오르고 싶었던 새로운 세계
그런 소년 시절이 있었듯 대나무도 한때는 부드러운 죽순 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 우주를 품고 아득히 뻗어있다
자신을 텅텅 비운 강골(强骨)
그런 인생길을 위해
나, 온몸에 얼음을 잔뜩 매달아본 적 있었던가
매사를 의연하게 바라보며 맑은 냉기 뿜어본 적 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