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또 다른 가을
시인묵객
2010. 10. 22. 20:21
또 다른 가을 / 정 호 승
올 가을에는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를 죽이지 말라
지난 여름날에도 어두운 강물을 바라보며
감자밭에 김매듯이 낡은 면 수건 한 장으로 하늘을 받치고
여의도 국회의사당 푸른 잔디를 깍으신 어머니
그 누구보다도 당당히 잘 자란
쇠비름과 질경이 풀들을 뽑아 던진
어머니의 밥과 눈물과 사랑을 위하여
올 가을에는 광야에서 우는 한 마리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를
죽이지 말라
어머니는 매일 밤 수원행 전철을 타고
군포를 지난 율전을 지나
어머니가 뽑아 던진 잡초 되어 돌아와 쓰러지고
나는 허옇게 뿌리 드러낸 어머니의 잡초가 되어
흙내나는 어머니 가슴팍에 엎드려 우나니
올 가을에는 어머니의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죽이지 말라
처서가 지나고 찬 서리가 내리도록
누가 어머니의 야윈 가슴을 밟고 지나간다
가을하늘을 나는 새들이
저마다 들녘에 작은 그림자를 떨어뜨리는 빈 들녘에 서서
나는 너의 이름을 부른다
가을 논길을 걸어 우리 시대의 풀을 뽑으며
사랑으로 오는 한 사람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