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가을에게
시인묵객
2009. 11. 3. 09:42
가을에게 / 오 광 수
이젠 서두르지 말았음 좋겠습니다.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이것 저것 살펴가며
단장해도 좋을 것을......
추녀 끝에 제비집일랑은 그대로 두세요.
어찌 보면 그것 나름의 멋이잖아요.
벽에 황토는 다시 바르세요.
색이 바랬네요.
지붕 위에서 목을 빼며 기다리는 박은
화장이 서툴러서 그렇지
몸매는 성숙한 처녀입니다.
아직 달빛과 염문은 없네요.
여름이 투정 부리고 간 계곡부터
천천히 달래며 내려오세요.
돌들이 제자리를 떠나
아직 서먹한 채로 서있는 곳에
보기 싫은 세월의 찌꺼기들일랑
노오란 보자기로 말끔히 덮으세요.
해맑게 웃던 아이 웃음소리는
그대로 잘 담아 가져오세요.
빨간 고추로 평상을 장식하고
귀뚜리 음악도 준비하고
시원한 바람으로
옷 한 벌 장만했습니다.
이젠 서두르지 말았음 좋겠습니다.
고운 얼굴 찬찬히 볼 수 있도록......
급하게 가신 뒤 그 허전함은
찬 세월을 더 힘들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