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빈 들녘에서... / 유인숙
저 머-언
12월의 빈 들녘에서
바람에 이리 저리 밀리다
제 풀에 지쳐 스러져버린
풀꽃을 기억하고 있는가
화려한 빛깔로
뭍 사람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붉고 흰장미처럼, 순백의 백합처럼
누구 앞에 선뜻 다가설 수 없어
슬픈 몸짓을
나 그런 풀꽃으로 서리라
잠시, 그 자리에 쓰러져 잠든 사이
땅 속에서는
작은 풀 씨들의 움직임이
또 다른 세상을 준비하고
기억 속에 잊혀져
훌훌 떠난 줄 알았으나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있는 풀꽃
질긴 생명력 가슴에 품고
또 하나의 수줍은 망울을 빚어가고 있다
바람도 스산한
12월, 빈 들녘에서
오래-오래 기억하는 이 없지만
다시 태어나기 위해 인내하는 풀꽃으로
나 그런 풀꽃으로 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