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12월의 빈 들녘에 서

시인묵객 2009. 12. 15. 00:18


 

 

 

 

 

 

 

 

12월, 빈 들녘에서... / 유인숙

 

 

 

저 머-언

12월의 빈 들녘에서

바람에 이리 저리 밀리다

제 풀에 지쳐 스러져버린

풀꽃을 기억하고 있는가

 

화려한 빛깔로

뭍 사람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붉고 흰장미처럼, 순백의 백합처럼

누구 앞에 선뜻 다가설 수 없어

슬픈 몸짓을

나 그런 풀꽃으로 서리라

 

잠시, 그 자리에 쓰러져 잠든 사이

땅 속에서는

작은 풀 씨들의 움직임이

또 다른 세상을 준비하고

 

기억 속에 잊혀져

훌훌 떠난 줄 알았으나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있는 풀꽃

질긴 생명력 가슴에 품고

또 하나의 수줍은 망울을 빚어가고 있다

 

바람도 스산한

12월, 빈 들녘에서

오래-오래 기억하는 이 없지만

다시 태어나기 위해 인내하는 풀꽃으로

나 그런 풀꽃으로 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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